목차
머리말 _ 4

1. 원손에서 세자가 되기까지 이홍위의 삶 _ 12
1) 이홍위 탄생과 세종의 기대 _ 12
2) 세종의 즉위 과정과 왕위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 _ 16
3) 인턴 왕이 된 세종 _ 22
4) 세종의 치세에 도움을 준 태종의 인척 및 사돈 제거책 _ 27
5) 경연을 활성화한 세종 _ 29
6) 집현전을 활성화하고 의정부서사제를 실시한 세종 _ 31
7) 세종의 애민정신을 형상화한 공법 제정 _ 33
8) 이홍위를 불행에 빠뜨리게 한 세종의 국정운영방식 _ 42
9) 세종이 중국어 발음기호로 만들었던 한글 _ 48
10) 세자의 결혼 생활을 파탄 낸 세종 _ 53
11) 풍수지리 사상에 지배당한 세종 _ 61
12) 세자가 된 이홍위와 아버지 문종의 삶 _ 67

2. 조선 제6대 왕과 상왕으로서 이홍위의 삶 _ 72
1) 조선 제6대 왕으로 즉위한 이홍위 _ 72
2) 정순왕후 송씨를 아내로 맞이한 이홍위 _ 77
3) 이홍위 즉위 초부터 야심을 드러낸 수양대군 _ 80
4) 야심을 이루기 위한 초석이 된 수양대군의 북경행 _ 83
5) 야심가들의 구심체가 된 수양대군 _ 87
6) 수양대군 야심의 중간단계 실현인 계유정난(계유사화) _ 91
7) 고급 한량 안평대군을 역모자로 몰아 죽인 수양대군 _ 98
8) 공신들 위에 조선을 입헌군주국화한 수양대군 _ 108
9) 공신 엄자치를 토사구팽한 수양대군의 의도 _ 115
10) 계유정난(계유사화) 이후 분열된 왕실 종친 _ 117
11)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_ 120
12) 세조의 술판정치 _ 123
13) 의심 많은 세조 _ 131
14) 세조 제거와 이홍위 복위를 위한 거사 실패(병자사화) _ 134
15) 사육신의 탄생 _ 163
16) 금성대군을 역모자로 만든 신하들 _ 166
17) 이홍위 제거를 위해 송현수를 역모자로 만든 세조 _ 169
18) 의경세자를 위해 이홍위를 제거하려던 세조 _ 171
3. 노산군으로 강봉된 이홍위의 유배 생활 _ 174
1) 유배 여정 1일째(6월 22일, 화양정에서의 송별연) _ 179
2) 유배 여정 2일째(6월 23일, 광나루 → 도미나루) _ 186
3) 유배 여정 3일째(6월 24일, 도미나루 → 양근나루) _ 191
4) 유배 여정 4일째(6월 25일, 양근나루 → 이포나루) _ 193
5) 유배 여정 5일째(6월 26일, 이포나루 → 서원리 원골) _ 195
6) 유배 여정 6일째(6월 27일, 서원리 원골 → 흥원창) _ 204
7) 유배 여정 7일째(6월 28일, 흥원창에서 대기) _ 216
8) 유배 여정 8일째(6월 29일, 흥원창 → 뱃재) _ 219
9) 유배 여정 9일째(7월 1일, 뱃재 → 공순원) _ 225
10) 유배 여정 10일째(7월 2일, 공순원 → 청령포) _ 234
11) 청령포에서의 유배 생활 _ 245
12) 관풍헌에서의 유배 생활 _ 247
13) 노산군을 죽이도록 명분을 제공한 금성대군 역모설 _ 252
14) 노산군의 죽음 _ 258
15) 노산군의 주검을 지킨 엄흥도 _ 264
16) 영월 낙화암에 새겨진 충절 _ 268
17) 노산군을 불행으로 몰고 간 세종의 처첩 및 적서 차별 태도 _ 269

4. 단종이 된 이홍위 _ 276
1) 사육신과 이홍위를 철저히 거부한 예종 대 _ 277
2) 정치적 홀로서기를 통해 송현수의 역모죄 굴레를 벗겨준 성종 _ 278
3) 사육신의 절의를 인정하고 최초로 이홍위 묘에 제사를 지낸 중종 _ 281
4) 사육신을 부정했지만 이홍위 묘에 제사를 지낸 선조 _ 284
5) 사육신 배향이 건의된 효종 대 _ 291
6) 이홍위 무덤을 왕실 종친 무덤 수준으로 대우한 현종 _ 293
7) 왕권 강화를 위해 사육신과 이홍위를 이용한 숙종 _ 294
8) 영월 장릉을 조성한 숙종 _ 305
9) 영월 장릉의 특징 _ 310
10) 이홍위를 영월로 떠나보낸 뒤 정순왕후의 삶 _ 317
11) 죽은 뒤 더 고달팠던 현덕왕후 _ 326

5. 신(神)이 된 이홍위 _ 333

각주 해설 _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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