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발간사 『한국영화 100년 100경』 발간에 부쳐 004
인사말 한국영화의 미래 100년은 지금부터 005
서문 006
연표 한국영화 100년, 영화사 안팎의 주요 사건 014

1901—1949년
한국, 영화와 만나다
1901년 활동사진의 도래: 버턴 홈스의 한국 방문과 영화 촬영 / 정종화 • 018
1903년 공식적인 첫 대중 상영의 기록: 한성전기회사의 동대문활동사진소 운영 / 정종화 • 020
1907년 한국인이 경영한 최초의 상설영화관: 복합 연희장으로 출발한 단성사 / 정종화 • 022
1912년 무성영화의 해설자 변사: 발성영화 등장 전까지 당대 조선 최고의 스타 / 한상언 • 024
1919년 한국영화의 출발: 연쇄극 <의리적 구토>와 실사 필름 <경성 전시의 경> / 정종화 • 026
1919년 최초의 영화 잡지 《녹성》 창간: 당대의 해외영화와 찰리 채플린 등 영화인 소개 / 김종원 • 028
1923년 최초의 극영화와 최초의 여배우 탄생: 윤백남 감독의 <월하의 맹서>와 여배우 이월화 / 정종화 • 030
1924년 한국의 영화 기술 개척자, 이필우: 단성사 촬영부를 거치며 조선영화 제작 / 정종화 • 032
1926년 무성영화 최고의 스타 나운규 그리고 <아리랑>: 서구영화의 요소와 민족의식을 결합… 전국 각지에 영향 / 정종화 • 034
1927년 카프 영화운동의 부상과 몰락: 단체 결성과 영화·간행물 제작 활동 / 한상언 • 038
1935년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 조선 사람들의 말소리가 스크린에 울려 퍼지다 / 정종화 • 040
1937년 ‘조영’과 ‘고영’, 양대 회사의 출현: 영화제작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기업화 추구 / 정종화 • 042
1930년대 조선영화 여배우 트로이카, 문예봉·김신재·김소영: 배우이자 여성으로서 당대 조선 여성의 삶을 표현하다 / 이화진 • 044
1930년대 ‘트릭 촬영의 일인자’ 이창근 감독: 독자 개발한 기재로 특수촬영을 시도 / 공영민 • 048
1946년 광복영화에 불 댕긴 <자유만세>: 해방 후 제자리 찾기 고심한 영화계 / 조준형 • 050
1949년 해방 후 북한에서 활약한 영화인들: <마음의 고향>의 윤용규 감독, 여배우 문예봉과 김연실… / 한상언 • 052

1950—1969년
한국영화, 전쟁을 딛고 비상하다
1950‒1953년 포탄 세례 속에서도 멈추지 않은 카메라: 한국전쟁 시기 기록영화 제작과 피란 도시에서의 영화제작 / 정종화 • 056
1955년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 박남옥: 고군분투 끝에 데뷔작 <미망인>을 완성하다 / 임순례 • 058
1955년 <피아골>을 둘러싼 용공 시비와 이중 검열: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성 결여라는 이유로 검열에 검열을 거듭 / 김종원 • 060
1956년 당대의 동양 최대 스튜디오, 안양촬영소: 전후 재건 흐름 속 영화 부흥을 도모하다 / 조준형 • 062
1956년 한형모와 <자유부인>의 시대: 당대 사람들의 변화하는 정서 구조 반영 / 조준형 • 064
1957년 아시아영화제와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 아시아 국가 간 교류 확대와 한국영화 기반 조성에 역할 / 공영민 • 066
1957년 <이국정원>, 합작영화의 시작점: 한국과 홍콩, 합작 역사를 시작하다 / 조영정 • 068
1957년 1950년대 후반 새로운 영화관들의 등장: 국제극장 신축을 시작으로 한 극장계 전후 재정비 / 이지윤 • 070
1959‒1960년 국내 대학의 연극영화학과 개설: 중앙대학교를 시작으로 가속화… 1971년엔 한국영화학회 창립 / 안재석 • 074
1960년 영화윤리전국위원회의 등장과 해체: 4·19혁명 이후 민간단체들이 조직한 자율적 심의 기구 / 조준형 • 076
1961년 신상옥과 영화제국 ‘신필름:’ 한국영화 산업과 현대사의 흥망성쇠를 보여 주다 / 조준형 • 078
1961년 <성춘향> vs <춘향전>: 최초의 컬러 시네마스코프 영화의 등장과 두 커플의 대결 / 공영민 • 080
1950‒1960년대 최은희, 전성기 한국영화사의 여성상: 고전적 미모와 연기력으로 독자적 영역 구축 / 김종원 • 084
1950‒1960년대 김지미, 1950~1960년대의 아이콘: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 후 이어진 드라마 같은 삶 / 주유신 • 086
1961년 <마부>의 김승호: 베를린국제영화제 특별은곰상 수상을 견인하다 / 김종원 • 088
1961년 리얼리즘의 수작 <오발탄>: 군사정부에 의한 영화 상영 중단 / 김종원 • 090
1960년대 김진규, 지성과 고뇌의 아이콘: 시대의 아픔과 무력한 개인을 연기로 구현 / 오영숙 • 092
1963‒1967년 청춘영화·청춘문화·신성일의 시대: 길거리 깡패 두수, 1960년대 최고의 청춘스타가 되다 / 이길성 • 094
1964‒1965년 <7인의 여포로>와 <춘몽> 사건: 이만희 감독은 40일간 옥살이, 유현목 감독은 기소 / 조준형 • 096
1967년 최초의 만화영화 <홍길동> 제작: 한국의 장편 애니메이션이 걸어온 길 / 공영민 • 100
1967년 한국식 공포영화 <월하의 공동묘지>: 영화 성공 이후 1980년대까지 전성기를 맞은 한국식 장르 / 백문임 • 104
1968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미워도 다시한번>: 히트작 연작물 관행의 효시가 되다 / 이길성 • 106
1960년대 신영균, 1960년대의 야성과 열정: 넘치는 에너지와 우직한 신념으로 영화 서사를 직조한 배우 / 오영숙 • 110
1960년대 1960년대의 여배우 트로이카, 문희·남정임·윤정희: 196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다 / 김종원 • 112
1960년대 1960년대 신 스틸러, 허장강·도금봉·김희갑: 주·조연 넘나들며 스크린에 활력을 불어넣다 / 박선영 • 114
1960년대 코미디영화, 코미디배우의 전성기: ‘홀쭉이와 뚱뚱이’ 등 관객 동원 보증수표로 활약 / 박선영 • 118
1950‒1960년대 여성 영화 스태프의 활약: 초창기 여성 영화인의 발자취 / 조영정 • 122
1960년대 지방 배급업자의 활약: 한국영화 산업 전성기의 제작과 배급을 뒷받침하다 / 박진희 • 124
1960년대 문예영화의 출현과 제도: 반공·계몽과 함께 국가 장려 3대 장르로 시작 / 박유희 • 126
1960년대 만주활극, 대륙을 상상하다: <지평선>에서 <쇠사슬을 끊어라>까지 / 조영정 • 130
1960‒1970년대 박노식과 <팔도사나이> 시리즈: ‘전라도 사나이’로 간판 액션스타에 등극하다 / 공영민 • 132
1960‒1970년대 한국영화를 빛낸 콤비들: 이만희와 서정민, 7년간 28편의 영화에서 협업한 최고의 파트너십 / 조영정 • 134

1970—1989년
한국영화, 재도약을 꿈꾸며 나아가다
1971년 한국영화의 새로운 기술적 시도: 70밀리 대형영화와 테크니스코프 촬영 방식 / 정종화 • 138
1972년 사간동 프랑스문화원과 문화원 세대: 검열 없는 영화 상영, 시네필들의 명소 / 정성일 • 142
1973년 영화진흥공사 설립: 한국영화의 제작 자본 조달 및 지원, 영화인 교육을 담당하다 / 조준형 • 144
1975년 ‘영상시대’의 뉴시네마 운동: 신인 배우 및 연출 지망생 공모, 잡지 발간, 영화제작 활동 / 안재석 • 146
1975년 청소년과 하이틴영화: 10대 스타 임예진의 등장으로 시작된 하이틴영화 붐 / 정성일 • 150
1970년대 2세대 여배우 트로이카, 유지인·정윤희·장미희: 스크린과 안방극장 넘나들며 인기몰이 / 김종원 • 152
1978년 동시녹음의 개척자, 정진우 감독: <율곡과 신사임당>으로 시작해 <심봤다>에서 성공 / 정종화 • 154
1970년대 최초의 여성 영화인 집단 카이두: 최초의 실험영화페스티벌과 나체 퍼포먼스를 펼쳐 / 맹수진 • 156
1960‒1990년대 ‘충무로 시대’의 여성 감독들: 홍은원부터 임순례까지 당대 유일의 여성 감독들 / 이길성 • 158
1980년대 초반 이장호와 배창호의 시대: 도시와 청년이 머물던 풍경을 그리다 / 김영진 • 162
1980‒1990년대 안성기, ‘국민배우’의 탄생: 만 5세 때 <황혼열차>로 데뷔 후 현재까지 굳건히 자리매김 / 허문영 • 164
1982년 <애마부인>의 심야 상영: 1980년대 신군부의 문화 정책이 영화계에 미친 영향 / 김형석 • 168
1982년 ‘독립영화’ 운동과 실천 단체들: 얄라셩을 시작으로 영화 집단 및 단체 창립과 분화 가속화 / 김동현 • 170
1984년 한국영화아카데미 개원: 실습 위주의 현장 교육… 상업영화 교두보로 자리 잡다 / 주성철 • 174
1980‒1990년대 독립영화,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 민주화 이후에도 검열과 탄압의 대상이었던 ‘영화’ / 원승환 • 176
1987년 <영웅본색>과 홍콩 누아르: 향후 10년간 한국 극장가를 지배하는 장르가 되다 / 주성철 • 180
1980‒1990년대 비디오 대여점의 시대: 마니아 문화와 결합하며 1990년대 영화 문화 활성화의 주역이 되다 / 김형석 • 182
1988년 UIP 직배 영화 반대 투쟁: 한국영화 산업의 정체성을 자문하는 계기가 되다 / 김형석 • 184
1980‒1990년대 강수연, 한국영화 최초의 월드스타: <씨받이>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 이유진 • 186
1980‒1990년대 ‘코리안 뉴웨이브’의 전개: 사회 비판적 자의식 겸비한 신인 감독들의 등장 / 김영진 • 188

1990—2019년
한국영화, 새로운 세계와 만나다
1991년 한국영상자료원 설립: 필름보관소에서 영상자료원으로 / 조준형 • 194
1992년 ‘기획영화’의 시작: 새로운 자본의 유입과 콘텐츠의 변화 / 김형석 • 196
1993년 <서편제> 최다 관객 동원: 서울에서만 100만 관객 넘기며 장기 흥행 / 정성일 • 198
1994년 한국영화 최고最古의 영화 홍보사, 올 댓 시네마: 마케팅 개념도 없던 시절 설립해 영화 산업의 산증인으로 / 조영정 • 200
1994년 단편영화, 새로운 창작자들의 탄생: 영화운동이자 개인성을 표현하는 새로운 세대의 무기 / 조영각 • 202
1995년 영화 주간지 《씨네21》 창간: ‘영화 잡지 춘추전국시대’에 창간해 24년 뒤 유일한 존재가 되다 / 주성철 • 204
1996년 영화 사전심의 위헌판결: 제한상영가 등급은 여전히 불씨로 남아 / 조준형 • 206
1996년 국제영화제 시대의 개막: ‘아시아영화의 시대’ 표방한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 허문영 • 208
1997년 한국적 컬트영화 작가로 되살아난 김기영 감독: 2008년 <하녀> 복원, 2018년 김기영 헌정관 개관 / 김영진 • 210
1998년 관람 환경의 급속한 변화: 최초의 멀티플렉스 CGV강변 / 정유미 • 212
1999년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탄생: 장르의 효시가 된 <퇴마록>, 장르의 기준이 된 <쉬리> / 김형석 • 214
1999년 스크린쿼터 사수에 나서다: 글로벌 시장 개방 앞에서 격전장이 된 한국영화 / 김형석 • 216
1990년대 1990년대의 신新르네상스: 신인 감독들이 주도한 한국영화의 새로운 부흥기 / 허문영 • 218
1990년대 스타 프로듀서의 시대: 주류 영화 혁신, 새로운 재능 발굴로 한국영화의 새 시대를 열다 / 허문영 • 220
2000년 필름 영화에서 디지털 영화로 전환: 저예산, 새로운 소재, 파격적인 실험정신으로 무장하다 / 전종혁 • 222
2000년 최초의 북한영화 개봉: 신상옥의 <불가사리>, 일본 수입사 통해 한국에서 개봉 / 김형석 • 224
2001년 조폭코미디, 2000년대 초반의 대표 장르: 상업적으로 늘 유효한 한국 특유의 장르로 자리 잡다 / 주성철 • 226
2002년 임권택 감독, 칸국제영화제에서 수상: 오원 장승업을 통해 돌이켜 본 자신의 삶, <취화선> / 정성일 • 228
2003년 ‘웰메이드’ 영화의 등장: 한국적 맥락에서 ‘웰메이드 영화’라는 용어가 갖는 특수성 / 허문영 • 232
2004년 ‘천만 영화’의 탄생: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왕의 남자> / 전종혁 • 234
2004년 고향으로 돌아온 일제강점기 조선영화: 중국전영자료관과 러시아 고스필모폰드 발굴 성과 / 정종화 • 236
2008년 최고最古 극영화 <청춘의 십자로> 발굴: 가정집 지하실에서 70년을 버텨 온 필름 캔의 부활 / 정종화 • 240
2000년대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시대: 영화 시장을 이끄는 4대 대형 투자배급사 체제 / 전종혁 • 242
2000년대 독립다큐멘터리의 흐름과 성과: 다양한 형식으로 분화하며 한국 사회에 끝없이 질문을 던지다 / 조영각 • 244
2000년대 독립영화, 제도와의 갈등과 협력: 블랙리스트, 여전히 청산 작업 진행 중 / 원승환 • 246
2000년대 송강호, ‘시대의 얼굴’: 연기의 세계를 탐험하는 유연한 전략가 / 이은선 • 248
2000년대 전도연,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인간의 심연을 구현해 낸 감정의 세공사 / 이은선 • 250
2013년 글로벌 시대를 맞이한 한국영화: 영화인들의 할리우드행, 할리우드 자본의 한국 시장 상륙 / 전종혁 • 252
2013년 2억 명 영화 관객 시대: 한국영화 시장의 눈부신 성장 그리고 호황에 따른 부작용 / 나원정 • 254
2016년 <부산행>과 2010년대 ‘한류’: 아시아 각국에서 새롭게 쓴 흥행 기록 / 주성철 • 256
2017년 <옥자>와 플랫폼 다변화의 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간 경쟁과 한국영화 풍경의 변화 / 나원정 • 258
2019년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 한국영화의 한 정점… 세계영화 지도 바꿀 획기적 사건 / 허문영 • 260

필진 263
도움 준 분 265
이미지 제공처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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