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조선 말기의 실학자. 호는 다산(茶山)이다. 1789년 문과에 급제하여 부승지 등 벼슬을 지냈다. 그는 문장과 유교 경학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천문·지리·과학 등에도 밝아 진보적인 신학풍을 총괄 정리하여 집대성한 실학파의 대표자가 되었다. 그는 당시 금지한 천주교를 가까이한 탓으로 좌천되어 귀양을 갔으나,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에도 를 비롯한 1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정약용은 40년 동안을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긴 조선 최대의 정치·경제학자이다. 죽은 후 규장각 재학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주요 저서에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 심서> 등이 있다.
출생지 : 경기도 남양주
출생 : 1762년
사망 : 1836년 02월 02일
1789. 문과 급제
1792. 수원선 수축
1794. 경기도 암행어사
1795. 병조참의
1796. 승지
1801. 경상도 장기로 유배
유형원, 이익의 실학을 계승, 집대성함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