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소개
천구백삼십육년 구월 이십팔일부터 천구백구십칠년 이월 삼일까지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나 광주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 대학교 법과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자신의 진로가 법조계가 아님을 깨닫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 팔군 영내에서 미국인들에게 귀국용 비행기표와 영어 성경책을 팔았다. 그리고 시카고의 엔사이클로피디어브리태니커 사에서 한국 땅에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을 보급했으며, 천구백육십팔년부터 천구백팔십오년까지 한국 브리태니커 회사에 몸담아 그 첫 몇 년 동안을 빼고는 줄곧 대표이사로 일했고, 천구백칠십육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출판사 뿌리깊은나무 주인으로, 천구백칠십육년부터 천구백팔십년까지 월간 《뿌리깊은나무》의 발행-편집인으로, 또 천구백팔십사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월간 《샘이깊은물》의 발행-편집인으로 일했다. 그는 두 월간 잡지를 통해 언론과 문화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을뿐더러 민속, 미술, 예악, 언어, 건축, 복식 할 것 없이 역사와 오늘을 잇는 분야에서 한반도 전통 문화 가치의 탐색에 몰두했다. 그의 업적은 관념에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구현되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를테면 널리 인정하듯이 뜨거운 전통 음악 사랑으로 이 나라에서 해방 후로 천구백칠십년대까지 낡은 가치의 예술로 여겨 부끄러워해 목숨이 위태로웠던 판소리를 다시 한반도 남반부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고 즐기는 음악으로 되살려 냈다. 똑같은 곡절로 낡은 생활의 상징으로 여겨 내다 버리던 놋그릇, 백자 그릇을 오늘의 생활에 어렵사리 되살린 것도 그였다. 그런가 하면 세계와 환경과 인류의 걱정거리에 일찍이 눈을 뜬 스승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삶의 큰 몫을 빼어난 전통 가치의 세계화와 탁월한 세계 가치의 한국화에 바쳤고, 남다른 심미안과 사물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문화 비평과 문명 비평을 글로, 입으로 가멸게 남겼다. 그는 또 한국어를 통찰한 언어학자였다.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이 이 나라 새 세대가 사용할 언어의 흐름을 새 방향으로 바꾸었다고 다들 인정하는 것은, 그가 타고난 언어의 통찰력으로 한국어의 가장 중요한 유산이라 할 그 짜임새를 올바로 응용하고 발견하고 복원하여, 논리와 이치에 알맞은 글을 한반도 주민들에게 제시하고자 힘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멋쟁이로 기억하고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 예술을 남달리 깊이 알고 사랑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천구백삼십육년에 태어난 그는 천구백구십칠년에 예순한 살로 세상을 떠났다. 좀 일찍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