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소개
최명익(崔明翊, 1903∼?)은 평남 강서군 증산면 고산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산삼 교역상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최명익이 평양고보에 입학한 이듬해에 사망한다. 1921년 일본 유학을 통해 도스토옙스키 문학에 심취한다. 1928년 최명익은 홍종인, 김재광, 한수철 등과 함께 동인지 ≪백치≫를 만들고 여기에 <희련시대>, <처의 화장>을 발표한다. 이때 유방(柳妨)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콩트 <붉은 코>, <목사>, 평론 <이광수 씨의 작가적 태도를 논함> 등을 집필한다. 1936년 최명익은 <비 오는 길>로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되고 “도스토옙스키의 수법”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작가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무성격자>, <역설>, <봄과 신작로>, <폐어인>, <심문>, <장삼이사> 등 일제강점기 동안 총 일곱 편의 소설을 창작한다. 그의 작품은 “비록 자조로 일관하고 있지만, 그 자조는 자포자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백철)을 찾으려는 것이며 “결말을 맺는 기술이 매우 수준이 높고, 아울러 인생의 순수성과 청신성을 빚어내는 데 성공”(김동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제 말을 경과하면서 그는 도스토옙스키의 심리적 고뇌로서는 “이러한 세계에서는 더 배겨낼 수가 없고 따라서 자기를 그런 투로 학대할 필요나 이유가 없다”(<레프 톨스토이에 대한 단상>)라고 진단한다. 지식인이라는 한계에 봉착한 그는 <장삼이사>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민중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해방 후 ‘평양예술문화협회’를 결성하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이 단체에서 간행된 ≪관서 시인집≫이 쉬르레알리슴의 시라는 점이 문제가 되어 공산주의 계열의 비평가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게 된다. 이때 최명익은 김조규, 양명문 등과 함께 자기비판의 과정을 거쳐 공산주의를 수용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1947년 최명익은 단편집 ≪맥령≫을 문화전선사에서 출간하며, 남한의 을유문화사에서 일제하의 작품을 모은 ≪장삼이사≫를 출간한다. 1956년 발표한 역사소설 ≪서산대사≫는 북한 문예의 모범작으로 평가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