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소개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 알제리 출신으로 1923년 프랑스의 중등학교인 리세에 들어갔고 후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는 1930년 폐결핵으로 중퇴하였다. 그 후 가정교사, 자동차 수리공, 기상청 인턴과 같은 잡다한 일을 하였다. 1930년대에 인민전선 내각을 지지했고, 1935년 플로티누스(Plotinus)에 관한 논문으로 철학 학사 학위 과정을 끝냈다. 1936년 에세이 <표리>, 39년 서정적 에세이 <결혼>을 출간했으며, 1940년 반정부활동 혐의로 알제리에서 추방되었다. 2차 대전 때는 소설 <이방인>(1942)과 철학적 에세이 <시지프의 신화>(1942)를 집필, 인생은 그것 자체로는 의미가 없으나 의미가 없으므로 더욱더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부조리의 철학''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다. 전쟁 기간 동안 카뮈는 지하에서 같은 이름의 신문을 출판하던 레지스탕스 조직 Combat에 가담하였다. 이 그룹은 나치에 저항하여 활동하였고 여기서 카뮈는 ''뷔에샤르(Beauchard)''라는 필명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카뮈는 연합군이 파리를 해방한 1943년 신문의 편집장이 되어 전투 이후를 보도했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 편집인으로서는 드물게 1945년 8월 8일에 일어난 사건 직후에 히로시마 원자폭탄 사용에 대한 반대를 주장하는 논설을 실었다. 카뮈는 Combat가 상업적인 신문이 되자 1947년 사임했다. 이때부터 카뮈는 장폴 사르트르를 알게 되었다. 전쟁 이후에 카뮈는 사르트르와 함께 생제르망 가에 있는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를 자주 찾기 시작했다. 카뮈는 프랑스적 사고에 대한 강의를 하기 위해 미국을 여행하기도 했다. 비록 그는 좌익의 정치학을 배웠지만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그의 강한 비난으로 인해 사르트르와 소원해지게 되었다. 1949년 카뮈의 폐결핵이 재발하여 2년간 은둔상태로 살았다. 1951년 그는 공산주의에 대하여 명쾌하게 반대하는 반란과 반역에 관한 철학적 분석의 내용을 담은 <반역자>를 발표했다. 이 책은 프랑스에 있는 그의 많은 당시 동료들을 화나게 했고 결국 사르트르의 기분도 상하게 했다. 이러한 반응은 카뮈를 화나게 했고 그는 연극들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철학에 대한 카뮈의 기여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설명하고 <이방인>과 <패스트>와 같은 많은 작품에서 설명한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 세계의 의미, 정순함에 대한 우리의 열망의 결과에 따른 부조리에 대한 카뮈의 사상이다. 그의 학문적 동반자 사르트르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카뮈가 실존주의자들의 캠프로 굴러 떨어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그의 에세이 에니그마와 다른 작품들을 통해 그에 대해 이념적 꼬리표를 붙여 분류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 중 많은 중요 부분은 실존주의와 깊은 관계가 있다. (--- 위키디피아) 그는 1957년 10월 ''날카로운 진지성을 지니고 오늘날 인간의 의식에 던져지는 여러 문제에 빛을 비춘 공적''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단두대에 관한 성찰>) 1960년 1월 4일 파리 근교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지은 책으로 <이방인>, <최초의 인간>, <페스트>, <시지프 신화>, <안과 겉>, <반항하는 인간>, <전락>, <태양의 후예>, <행복한 죽음>, <여행일기>, <휴일의 에세이>, <비둘기를 잡아먹던 시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