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국학과 근대학문의 발전에 공헌한 연세대 지성들의 발자취

1885년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에 의해 창립된 이후, 130여 년 동안의 연세 역사는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와 같이 숨을 쉬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세대학교에서 추구한 학문과 교육은 한국 근현대사의 과제를 해결하면서 발전하였고, 연세의 독특한 학풍을 만들었다.
연세대학은 구한말 개혁과정에서 새로운 서구문명의 통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국학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 했고, 식민지시기에는 민족문화와 민족사 연구를 통해 민족의식을 보존하는 요람 역할을 했으며, 우리나라 국학(國學)을 자리매김하고 서양의 근대학문을 수용하여 형성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점에서 연세대학교 학문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여러 선구적 연구자들의 학문적 업적을 되돌아보고 그 가치를 조명함으로써 우리 민족과 국학이 앞으로 나갈 방향을 모색한 작업이다.
우선, 김성보는 기독교계 전문학교 중 근대적 대학교육의 제도에 가장 부합한 운영체계를 갖추었던 연희전문학교 졸업생들의 진로를 조사하여, 일제하 조선인 사회가 기대했던 근대적·민족적 고등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에 이 학교가 얼마나 부응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국·기독교계와의 연관성이 어떤 특징을 보여주는지 살펴보았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경성제대가 식민지 지배의 엘리트를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 반면, 연희전문은 상과와 문과 졸업자들 다수가 민간사회로 진출하는 경향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한편 법과와 상과를 둔 보성전문학교의 졸업생들은 관공서와 법조계, 은행 등에 많이 진출했다.
윤덕영은 국학자이자 연희전문 교수 정인보가 백낙준, 백남운 등 동료교수와 맺은 학문적 관계, 동아일보 송진우와의 교유관계를 중심으로 그의 사상을 규명한다, 정인보가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 일제의 식민지배 이데올로기만이 아니었다. 문명개화론, 서화론 등으로 상징되는 서구 근대 사상을 무비판적으로 수입하는 경향에 대한 비판이었으며, 1930년대 정인보와 안재홍 등에 의해 본격적으로 추진된 조선학운동의 최대 성과로 조선후기 특정의 학문경향이었던 실학의 재발견임을 들고, 허학이 되어버린 기존 유교, 주자학에 대신하여 새로운 사상경향으로서 실학을 근대적으로 복원한 것이란 점을 살펴보았다.
이수일은 연희전문 교수를 지냈고 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의 정치적 행보를 살폈다, 조병옥이 열정적 반공주의자이자 특별한 친일흠결도 없었고, 미국적 자유민주주의-반공이념을 내면화시킨 컬럼비아 대학 졸업자라는 화려한 학적 배경과 1920년대 말 신간회 사건으로 투옥된 항일경력까지 두루 갖추고 있었기에 해방 직후 미군정이 가장 믿을 수 있는 한국인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고 보았다. 그는 경무부장으로서 군정경찰의 공권력을 반공질서의 기반으로 적극적으로 육성해 갔는데, 일제경찰에 복무했던 한국인 경찰관을 주축으로 재빨리 경찰력의 강화에 나섰다. 경찰은 기술과 경험이 요구되는 특수 기술직이기에, 그들의 등용은 불가피하며, 직업적 친일파가 아닌 생계형 친일파로 별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1947년 10월 조병옥은 ?남조선시국대책요강?을 작성하고 민정장관 안재홍을 포함한 군정청 한국인 부처장의 연명으로 하지에게 제출하였다. 그 핵심은 미소공위와 같은 신탁통치를 경유하는 국제협의나 좌우·남북합작 같은 무분별한 통일은 결단코 수용할 수 없는 것이며, 남한 내 일체의 친소=반군정=반미=반애국적 세력과 이념을 소탕 제거하고 가능한 빨리 남한정부를 수립하여 남북통일의 모체-주동력으로서의 역할을 완수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는 이후의 정치과정에서 대부분 현실화되었다.
정명교는 1937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시인 설정식의 삶을 규명했다. 설정식은 연희 졸업후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셰익스피어 연구를 했고, 귀국한 뒤 번역과 평론 작업을 했다. 해방이 되자, 조선공산당에 입당하는 한편 미군정청 여론국장으로 일하고 영자신문 「서울타임즈」 주필 겸 편집국장에 취임한 언뜻 모순적인 행보의 내적 연관을 살펴보았다. 무엇보다도 해방기에 왕성한 문학 활동을 전개하여 토마스 만과 셰익스피어 작품의 번역, 「종」, 「포도」, 「제신의 분노」등의 시집을 출간하며 활발한 문학활동을 했던 그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에 자진입대하고 월북하였다가 1951년 휴전회담 시 인민군 소좌로 조중 대표단 영어 통역관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것, 그리고 1953년 남로당계 숙청과정에서 임화 등과 함께 기소되어 처형당하기까지, 격동기 한 비극적 지식인의 행로를 살펴보았다.
이준식은 한글과 민족의식을 일체화한 연희전문학교의 풍토에서 학습하고 성장했던 한글운동가 정태진의 삶을 드러낸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감된 이후 한글운동은 정태진에게 삶의 모든 것이었다. 해방후 한반도의 남쪽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결정적으로 된 상황에서 미국 유학생 출신 정태진은 원한다면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 정태진은 이를 모두 거절하고 조선어학회에서 사전을 편찬하는 일에 몰두했고, 신문과 잡지에 한글운동과 관련된 글을 발표하고 조선어학회의 한글전용론을 체계화한 최초의 단행본을 냈다. 불의의 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한 정태진의 삶을 통해 일제강점기에 연희전문학교가 한글운동에서 차지하고 있던 위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장건수는 한국인 최초의 수학석사로 연희전문학교 수학과 교수로 활동했던 이춘호의 삶을 규명하였다. 이춘호는 미국 유학중인 1915년 4월 독립운동단체인 재미 한국유학생연맹에 가입했으며, 1919년에는 재미 한국독립운동동지회 학생부장을 맡아서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하였다. 귀국 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독립을 목적으로 한 흥업구락부에 가담하여 활동한 혐의로 1938년 5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서대문경찰서에 체포되었다. 해방후에는 미군정청 고문 겸 교육부 차장을 역임하였고, 1947년 10월에는 한국인 최초로 서울대학교 제2대 총장에 임명되어 1948년 5월까지 재직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반민족행위처벌 특별위원회 재판부 재판관으로 해방 후 혼란기에 국가 발전을 위해서 헌신하였지만, 한국전쟁 중 북한군에 납치되어 1950년 7월 26일 평양감옥에서 병사하는 등 안타까운 한국수학의 선각자의 삶을 재구성하였다.
황정남은 연희전문학교 출신으로 한국물리학계의 태두이자, KIST 설립 준비 등 업적을 이루고, 한국 과학기술의 기반을 조성하고, 또한 한국 교육의 기틀을 마련한 한국 과학계와 교육계의 큰 어른인 최규남의 삶을 재조명했다.
비록 서양 선교사에 의해 설립되었지만, 근대의학과 의료체계를 정립한 세브란스는 물론, 연희전문에서 추구한 ‘동서고근 사상의 화충’이 우리나라 근대학문을 형성한 힘이고 원천이었다. 일제 때부터 지금까지 ‘연세대학교’가 국학의 본산이 되고, 자연과학의 터전이 되었으며, 실용적인 상경학을 견인할 수 있었던 바탕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