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생산과 유통은 역사 일반에 관련된 문제인 동시에 지식사·사상사와 긴밀하게 연관된다. “어떤 책을, 어떤 주체가, 어떤 방식으로 생산하는가?”라는 물음은 특정 지식과 사상의 생산 의도를 묻는 것이다. 책의 유통을 엄밀히 고찰하는 것은, 지식과 사상의 유포 이면에 있는 권력의 문제를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넓게 말해, 책의 생산과 유통을 따지는 것은 한 사회의 성격을 추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서적문화사에서 숙종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족(士族)이 국가를 이끌었던 조선에서 책은 이들의 의도에 따라 생산되고 유통되었다. 조선이 끝날 때까지 책의 인쇄, 출판, 생산, 유통 등 거의 모든 문제의 결정권은 사족이 장악하고 있었다. 비록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와 예송, 환국 등 내부적인 큰 진통을 겪으면서도, 조선의 사족체제는 이후 3세기 동안 유지되었다. 사족 체제에 봉사하는 서적문화는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그 기본적인 성격이 변하지 않았고, 숙종조의 변화도 이러한 기본적 성격 위에서의 세부적 변화였다. 당시의 정국 변화는 사족을 지역별로 정치권력에서 배제하는 과정이었고, 여기서 등장한 경화세족의 존재와 당쟁은 숙종조 나아가 조선 후기 서적문화를 간섭하였다. 숙종조에 사족체제가 다시 보유하게 된 서적의 인쇄·출판 시스템과 하드웨어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성과는 자유롭고 활발한 새로운 사유를 담은 서적의 제작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영조와 정조 시대에 가서야 보다 풍부한 서적문화의 개화가 가능했다. 숙종시대가 갖는 인쇄 출판과 서적문화의 특징은 무엇이며, 이러한 한계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