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컬럼비아대학출판부 25년 차 북 디자이너가 쓴

책의 기억과 생애의 기록

사람은 늘 어딘가에 머무른다. 그곳은 때로 육체적 장소이며, 때로는 정신적 장소다. 한국에서 중학교까지 마치고 미국으로 이주한 북 디자이너 이창재는 전혀 다른 두 세계를 경험했으나 마음은 언제나 책에 머물렀다. 책으로 관계 맺고 책을 통해 세상을 마주했으며, 이제는 책 만드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기억과 기록 사이』는 컬럼비아대학출판부 25년 차 북 디자이너가 읽은 책과 만든 책에 관한 에세이다. 지은이는 네 살 때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로 독서로 자신의 세상을 구축하고, 20여 년간 북 디자이너로 생계를 꾸리며 책을 삶처럼 여겨왔다. 『기억과 기록 사이』는 책을 매개로 한 사유와 기억을 찬찬히 담아내고 있으며, 다루는 책의 목록에서 지은이의 일관된 눈썰미와 정서가 느껴진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책과 관련한 일을 한 전문인의 기록인 동시에, 모국어를 잃지 않은 디아스포라의 책에 대한 동경과 헌사이고, 이민자이자 바이링구얼의 책을 통한 교차적 문화 읽기이며 장소와 시대에 관한 감각이 깃든 산문이다. 따라서 한 개인이 마주한 기쁨과 고통, 관계와 단절, 소망의 실현과 좌절 등 독자가 일상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민자로서 한국을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을 느낄 수 있으며, 아시아권 문화 교류의 일면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북 디자이너를 비롯한 출판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책 소비자뿐 아니라 생산자의 고민도 목격할 수 있고, 번역과 글쓰기에 관한 문제와 과제, 한국과 미국의 출판 문화 차이 등을 엿볼 수 있다. 이에 더해, 이 책에는 체제의 모순을 포착하고 현장의 맥락과 서사를 능숙하게 기록하는 사진가 노순택과 감정에 관해 집요한 관심을 가지고 대상 내면의 색채와 정서를 표면으로 이끌어내는 사진가 안옥현이 『기억과 기록 사이』에서 다루는 책을 오브제로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다. 글로 표현한 책의 가치와 의미를 사진으로도 재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며, 노순택 작가와 안옥현 작가가 그간 해온 작업과는 다소 다른,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독자라면 탐독할 만한 책이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