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기호의 개념을 분석하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기호 이론을 정리하면서 기호에 대한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한마디로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은 기호의 개념과 그것이 제기하는 철학적 문제들이다.
이 책은 에코가 기호학의 이론적 토대인 <기호>에 관해 명쾌한 설명을 해놓은 것으로, 기호에 대한 포괄적인 정의와 그것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정의되고 어떠한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는지 밝히고 있다. 기존의 기호학자들에게는 물론 기호학에 처음 접근하는 일반 독자 및 학생들에게도 입문서로서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에코는 이 책에서 다음의 세 가지를 담고자 했다. 첫째, 현재 기호학이 다루고 있는 모든 주제에 접근한다기보다는 다양한 기호의 개념을 분석한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의 이론을 정립하기보다는 다양한 기호 이론의 파노라마를 펼쳐 본다.
셋째, 기호의 개념이 특수 기호학이나 언어학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한다는 의미에서 철학 사조의 전체적인 역사를 훓어본다. 따라서 변형 생성 문법과 같이 오늘날 언어학의 영역에서 논의되고 있는 문제들과 전제의 문제, 대화의 준칙, 언술 행위, 서사 구조, 문학 기호학 등의 담화 기호학 및 텍스트 기호학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다루지는 않는다.
이 책의 이탈리아어판은 1972년에 집필되었으나 기호학 입문서로 그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이후 프랑스어판으로 수정? 첨가? 번역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초판 발행 이후 에코는 『일반 기호학 이론』(1976년), 『이야기 속의 독자』(1979), 『기호학과 언어 철학』(1984)을 써나가며 자신의 기호학 이론을 정립해 나갔는데, 이는 모두 이 책 『기호: 개념과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 책은 에코가 머리말에서 밝히듯이, 오로지 기호를 정의하기 위해 쓴 저술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행된 여타 에코의 저작들과는 달리 에코 특유의 <재미>는 물론이고 라틴 문화의 특징 중 하나인 문체의 화려함 내지는 유희성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의미를 갖는 것은 우리 사회에 기호학과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진 기호학적 분석이 마치 유행처럼 번지는데도 그것의 밑바탕이 되는 기호와 커뮤니케이션 과정,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이론적 토대가 제대로 구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은 기호의 인지 문제와 아직은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퍼스의 기호 이론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에서 흔히 말하는 표류의 개념을 기호 현상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시대에 더욱 광범위하게 쓰이는 도상 기호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기호학뿐 아니라 여타 분야에도 유용한 학술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