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피에르 보나르가 활동했던 20세기 초는 야수파, 입체파, 초현실주의 등 여러 예술 운동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왔던 시기였다. 서양 미술사에서 보나르는 폴 세뤼지에, 모리스 드니, 에두아르 뷔야르 등과 더불어 "나비파"("Nabi"란 히브리어로 비전의 전수자 혹은 선지자를 의미한다)로 분류되지만, 정작 그는 당대의 유행과 시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자적인 행로를 따랐던 화가였다. 

그는 독창적인 도안들로 인기를 끌었던 삽화가였으며, 예술과 일상생활의 접점을 찾고자 했던 실내 장식가였다. 또한 프랑스 전통 회화의 연장선에서 인상파에 대한 존경, 일본화에서 받은 영감, 사물에 대한 심리적 분석의 도입, 거울의 효과를 이용한 주제 구성, 음악적 색채를 통한 다양한 공간 연출 등…… 그 모든 것을 배척하지 않고 자유로운 사고 속에서 수용하며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였던 화가였다. 

그는 색채가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고, 자연을 향한 인내의 시선으로 색채의 새로운 리듬과 질서를 발견하였다. 그에게 그림은 끊임없이 살아 약동하는 색채를 포착하고 분석하여 일상적 삶의 공간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가 날씨와 색채를 끊임없이 기록하고 분석하고 수정하는 과정은, 오늘날 우리에게 "예술가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새로이 던지며 감동을 준다. 말년의 자화상 <권투 선수>를 통해 앙투안 테라스가 말하는 것처럼, 보나르는 “자기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고독하고 내밀한 대화를 통해 자신의 모습에 도달했다.” 

보나르가 즐겨 삼았던 소재들은 미역 감는 아이들, 뛰어노는 개, 활기찬 대도시의 풍경, 차분하고 가정적인 실내 정경 등 소박하고 일상적인 대상들이었다. 이 책에는 그의 따뜻한 시선들과 더불어 신실한 우정을 담아 편지를 주고받았던 마티스와 모네, 모델이자 평생의 반려자였던 마르트를 비롯하여 보나르 삶의 기쁨과 슬픔들이 모두 들어 있다. 

그것들은 우리를, 색채와 구조에 대한 새로운 관심으로 단조로움과 추상성을 벗어나 삶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담아내고자 했던 보나르의 작품에 한 발 더 가깝게 다가서게 한다.